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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스물여덟 9월 그 이후

출근하기 싫어서, 매일같이 늦잠자던 버릇에 몸이 버티지 못했나보다

누적된 피로로 고단했던 몸은 업무시간 내내 비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남들은 불금이라고 술집에서,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만 나는 어딘가 보이지 않는 수면주사를 맞은 것처럼 이른 저녁시간에 잠 들었다

그리고 알람 소리없이 잠에서 깬 새벽시간

인간의 정서가 으레 그렇듯 감수성 충만한 나는 지금으로부터 꼭 10년전 이 무렵이 생각났다

공무원 시험에 실패하고 다른 진로를 모색하던 날들

두려움에 빠져 공무원이 아닌 다른 분야를 고민했었고 그 결과가 심리상담 분야였었다

작은 가정 상담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뭐든 배우려 했던 그 때

상담소장 아주머니가 내준 테스트가 있었는데 그 테스트에는 너희 가족을 그려보라고,

아마 기억엔 물고기를 그려보라고 했었던거 같은데.. 나는 자연히 떠오르는 대로 물고기를 그렸었다

총 네마리를 그리고 소장님에게 보이고 그림에 따른 설명을 했더니,

내 설명을 듣고는 소장님도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도 굉장히 의아해했었다

왜냐하면.. 실제로 우리가족은 아빠 엄마 형 그리고 나 네식구 중 막내가 나였지만

그림속 물고기 중에선 내가 가장이었고 아내와 아이들 두명을 그린 그런 그림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내 나이 스물여덟 9월, 서른도 되지 않은 그 때에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평생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이었기에 그 때도 빨리 취업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만 한다는 그런 압박감속에 살았기에, 그게 맞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자아에게 강요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스물여덟로부터 서른여덟에 이르기까지 정확히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그 좋은나이에 벌써 그런 현실적인 책임을 짊어지려 했던 마음에 대비되게, 지금의 나는 아내도 아이도 없다

결혼같은걸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물아홉에 공무원이 됐고, 서른살에 처음 연애를 한 이래로 많은 기회가 있었다.

정말 수많은 여자들이 스쳐지나갔다

80번에 가까운 소개팅, 공무원 교육원에서, 타부서 사람과의 만남에서, 직장인 동호회에서, 교회에서, 웹상에서..

많은 만남이 있었고 여덟번의 연애가 있었다

하지만 나도 느끼고 있었던 내 책임감은 뭔가 다른 방향의 책임감이었던 걸까

내가 만나는, 결혼할 사람은 내가 원하는 바에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고 여겼던게 독이 됐고, 다른 사람의 시선과 주문, 조언 등등 외부에 유독 민감하고 예민한 내 성품은 늘 나를 위한 연애가 아닌 결혼을 위한 연애로 이어졌다

저 수많은 만남 속에서도 그 사람이 결혼할 만한 사람인가 아닌가

그저 만나고 즐기는게 아니라, 그 사람이 좋으면 그걸로 되는게 아니라 결혼 대상인가 아닌가 이걸 생각하고 가려내느라 그렇게 썩 연애다운 연애를 즐기지 못했다는게 이제와서 못내 마음 아팠다

누굴 탓할 것도 아니었다

나는 늘 과도한 책임감에 정신이 얽매여 있었고 내가 아닌 외부세계에 대한 과잉된 의식에 몸서리 쳤다

서른 여덟, 이제 더는 누구를 만나고 결혼을 논할 기회조차도 없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사이 세월이 많이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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